왜 매니저 당했나(?)
프로그래머로서의 삶에 충분히 익숙해질 무렵, 저는 자연스럽게 팀장이 되었습니다.
사실 매니저라는 역할을 특별히 준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실무를 잘했을 뿐이었으니까요.
저희 팀은 이제 갓 3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팀의 시작부터 함께해온 멤버였고, 최근 2년 동안 실무력을 인정받으며 자연스럽게 팀장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프로페셔널한 프로그래머로서 일한 경력은 팀에서 가장 짧았지만, 업무에서 보여준 실력이 팀원들의 신뢰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리더가 된다는 것이 걱정되거나 어렵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니징이 완전히 익숙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분명히 낯선 부분은 존재했습니다.
낯설지만 명확했던 매니징의 본질
매니징을 시작한 후 많은 책과 강연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매니지먼트의 필수 스킬들을 접했습니다. 예를 들면, 커뮤니케이션 능력, 업무 위임, 감정적 공감, 동기부여 등입니다. 하지만 직접 매니징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좀 더 명쾌한 사실이었습니다.
매니징의 본질은 결국 ‘실력’과 그로 인한 ‘신뢰’였습니다.
저는 경력이 짧았지만, 확실한 업무 능력을 갖고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팀원들과 빠르게 신뢰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신뢰를 바탕으로 일이 매끄럽게 진행되니, 자연스럽게 팀 분위기도 좋아지고, 협업과 커뮤니케이션 또한 원활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낯선 상황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일을 잘하는 게 모든 소통의 시작
매니저가 된 이후 경험한 유일한 난관은 성과가 낮은 팀원과의 소통 문제였습니다. 이는 단지 소통 능력이나 관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업무 성과에서 비롯된 문제였습니다. 성과가 낮으니 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작은 트러블이 발생하곤 했습니다.
반대로, 일을 잘하는 팀원과는 늘 즐겁고 명쾌하게 소통이 이루어졌습니다. 일을 잘하면, 자연스럽게 커뮤니케이션도 원활해지고, 그 과정 자체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경험이 됩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매니지먼트의 또 다른 본질을 깨달았습니다. 충분한 업무 수행 가능 역량이 결국 모든 소통과 협업의 기초가 된다는 점입니다. 매니저는 팀원들이 적절한 업무를 맡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고 지원하는 역할임을 상기시키게 되는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걱정은 이곳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매니저가 인지하고 있는 성과에 대한 판단이, 무의식적인 태도나 분위기로 실무자에게 전달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입니다. 유독 퍼포먼스가 아쉽다고 생각되는 팀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발생하는 건, 매니저만 알고 있는 그 정보가 태도로서 감정으로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를 매니저는 스스로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마음 속 깊은 한 켠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객관화된 정보 얻기
크고 작은 이벤트가 있을 때 마다 팀원들의 귀를 빌렸습니다.
매니저와 Dennis간 발생한 사건을, 매니저가 같은 팀에서 일하는 Peter에게 직접 묻는 것은 객관적인 답변을 얻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많은 매니징 코치들은 이런 경우 팀 내 믿음직한 관계를 구축한 누군가, Allan에게 매니저와 Dennis간 이벤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Peter와 얘기해 봐 달라고 부탁하는 방법을 사용하라고 말합니다.
물론, 여러 화자의 생각을 거치며 다소 오염될 수 있는 정보를 얻게 될지도 모릅니다.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지만, 이후 Peter와 직접 의견을 물어 상황에 대한 객관화 과정에 조금이나마 다양한 시각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매니저로서 스스로 돌아보기
저는 매니저로서 객관성을 유지하려 노력하지만, 사실 누구나 스스로에겐 조금씩 관대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제 스스로를 돌아보는 질문들을 던져봅니다. 예를 들어, 이번 주 내가 했던 커뮤니케이션은 명확했는지, 특정 팀원과의 소통에서 내 감정이 앞서지는 않았는지, 혹은 특정 팀원에게 무의식적으로 지나친 기대나 편견을 가지지는 않았는지 같은 것들입니다.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질 때는 감정과 판단을 분리하여 가능한 객관적으로 되짚으려 노력합니다. 매니저도 결국 사람인지라 완전히 감정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스스로가 편향될 수 있음을 자각하는 것 자체가 매니저로서 객관성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감상하다 보면 무례한 상황에서 아래와 같은 뉘앙스의 일침 대사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기분이 태도가 되어서는 안된다.
저는 지는 것을 싫어하고 승부욕이 강한 편인데요, 그러다보니 꽤나 마음에 새기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용입니다.
솔직한 피드백 문화 만들기
또 하나 제가 매니저로서 신경 쓰고 있는 것은, 팀 내에 솔직하고 건강한 피드백 문화를 만드는 것입니다. 매니저가 팀원을 평가하고 관리하는 것만큼이나 팀원들이 매니저에게 자유롭게 의견을 줄 수 있는 분위기 역시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이를 위해 최근에는 일부러 팀원들이 저에게 가볍게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 보았습니다. 처음엔 다들 조심스럽고 어렵게 생각했지만, 제가 먼저 솔직하고 가벼운 톤으로 질문하고 피드백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자, 팀원들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과정은 저를 포함한 모두에게 편안함과 신뢰를 더해주었습니다. 팀원들의 피드백을 통해 제가 미처 보지 못했던 문제점이나 개선점도 명확히 인지할 수 있었고요.
회사에서는 분기별 피드백(연 3회)과 연말 개인 성과평가(연 1회)를 포함해 총 4회의 공식적인 평가 및 면담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이벤트성으로 진행되는 상시 원온원은 공식 평가와는 또 다른 편안한 분위기에서 소통할 수 있어 앞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해보려고 합니다.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
매니징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과 사람이 함께 일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을 돌아보아도, 업무가 잘 되는지의 여부는 업무 자체보다 그 업무를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업무를 위한 커뮤니케이션도 결국 사람과 사람의 관계 위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종종 고민합니다. 어떻게 하면 팀원들이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예쁜 단어로 포장하거나, 쿠션어로 돌려 말하는 식의 감정적인 접근은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이런 방법들은 일시적인 효과만을 줄 뿐, 업무적 부족함을 일시적으로 가리는 역할밖에는 하지 못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매니저가 팀원들이 업무를 잘할 수 있게 돕는 것입니다.
팀원이 업무에서 성과를 내고, 스스로 성장할 때 느끼는 성취감만큼 강력하고 지속적인 동기부여는 없습니다. 결국, 팀원들이 즐겁게 일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들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고, 지원하는 매니저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꾸준히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 ‘낯설고 재미있는’ 상황들, 그리고 매니저로서 팀원들이 일에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과정들을 기록해볼 생각입니다. 이 기록들이 저 자신은 물론,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다른 분들에게도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